아버님 전 상서
( 4 바기오 목장) 홍은미 목녀, 2019년 5월 5일
이제는 날씨가 많이 따뜻해 졌습니다. 꽃이 피고 지고 연두빛 연린잎이 초록의 건강함을 뽐내며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행복과 평화로움이 가득한 가정의 달 5월인데 올해는 5월이 많이 쓸쓸하고 문득문득 서글프며 괜실히 뒤돌아보게 되는 아쉬움과 허전함으로 눈물이 고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앙상한 가지만 쓸쓸하던 겨울날에 갑작스런 전화를 받고 시린 손에 힘을 주어 핸들을 꼭 잡고 떨리는 가슴으로 달려갔던 그날 병원응급실 앞에서 만난 아버님의 또렷한 목소리와 표정이 이리도 그립게 될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수술을 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힘을 내서 고약하게 소리도 지르시고 한번씩 역정을 내시며 그렇게 저의 삶속에 대부분을 자리하셨던 아버님의 자리를 지키실꺼라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너무 야위시고 치매로 온전한 대화도 할 수 없지만 마주치는 눈빛 속에서 아버님의 삶의 의지와 커다란 자존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남들은 잘 모를 것입니다. 집 계실 수 없는 현실 속에 어쩔 수 없이 병원에 모셨지만 그저 치매에 걸린 인지력이 떨어진 노인이거나 병원 시스템에 의해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비인격체로 대소변도 못 가리는 노인네가 쓸데없는 고집을 부린다며 관리하기에 편안한 방법을 사용하며 아버님을 대하는 퉁명스런 목소리와 손길에도 작은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얼마나 마음이 아프게 눈물을 감추는지 남들은 모를 것입니다.
침상에 누워 산소호흡기로 산소를 공급받고 링거와 코줄을 의지하여 영약식으로 끼니를 챙기시는 아버님을 뵙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모릅니다. 요즘은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집에 가자”고 조르시며 고집을 부리시던 아버님 땜에 속상했던 때가 있었나 싶습니다. 차라리 집에 가겠다고 고집이라도 부리신다면 조금은 덜 힘들텐데요
이제는 저의 목소리에도 반응도 점점 힘을 잃어가시는 아버님의 이마에 손을 얹고 아버님 귓가에 가까이 다가가 또박또박 기도를 해 드릴때면 정확하게 의지를 표현해 주시고 아멘를 하시는 아버님의 작은 목소리가 그간의 어떤 표현보다 안심이 되고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합니다.
스물여섯 어린나이에 아버님을 아빠처럼 생각하고 함께 살기 시작했지만 아버님이 아빠와는 다르다는 것을 아는데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아버님을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을 점점 멀어져갔고 시집살이 10년, 20년,,, 그렇게 굳은살 박인 며느리 경력이 되어 어느새 저는 쉰살이 되었습니다. 그 흔한 추억하나 행복한 기억하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감정이 없이 가끔 원망을 할뿐 그저 며느리로서 감당해야할 일을 감당하는 것이 기쁘지도 어렵지도 않을 만큼 익숙해질 수 밖에 없는 25년의 세월을 이제와서 돌아보게 되어 죄송합니다.
아마도 그 세월속에서 스스로 상처를 내고 있던 제 모습이 안타까우셨던 하나님께서 회복의 계획을 진행하고 계셨던 것 같아요 그저 며느리의 도리일뿐 친절함도 열심도 없었기에 저는 아버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없는 것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혹시 아버님과의 이별이 다가와도 그렇게 슬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병상에 누워 계시는 아버님을 보며 그간의 섭섭함이나 억울함은 마치 가위로 싹둑 잘라낸 것처럼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긍휼의 마음으로 아버님을 마주하며 눈을 마추고 자연스럽게 아버님을 만지고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간섭하심에 너무 놀랐습니다.
아버님과의 이별을 준비하며 아버님 방문 넘어 기침소리가 들리면 부드러운 걱정보다는 불평의 마음을 갖었던 못된 며느리의 속내를 아버님은 모르셨기를 기도합니다. 이런저런 투정들을 가볍게 생각하며 그 마음을 읽어드리지 못한 지혜롭지 못한 어리석은 며느리의 모습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셨기를 기도합니다.
마음에는 늘 가득하지만 표현하지 못해 그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아들의 마음은 아시는지 호흡이 곤란한 상황에도 “아버지” 부르면 눈을 크게 뜨고 아들을 찾는 눈빛을 보며 아버지와 아들의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가끔 소희를 못 알아 보는 할아버지의 반응에 눈시울을 붉히며 가족사진을 보여드리며 “할아버지 다 잊어버려도 네명은 기억해야해” 하며 사진속 한명 한명을 짚어가며 재호 은미 범진이 소희는 꼭 기억하라고 눈물을 보이는 소희를 향해 환한 미소를 보여주시며 기억해 내시고 알아 알아 고개를 끄덕이시는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휴가나오면 제일 먼저 할아버지 병원에 찾아가는 범진이가 건강하실 때도 수없이 물어 봤던 구원의 확신에 대한 질문에 한결같이 “몰라” 하며 퉁명스럽게 대답하시던 할아버지가 이제는 복음을 전할 때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확실하게 고백하시는 보습을 보며 행복해하며 오랜 기도제목이였던 할아버지의 영혼구원이 응답되었다며 기쁘게 군에 복귀해서 매일 할아버지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긴 세월 동안 그렇게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아끼시던 아버님이 얼마전 문득 곁에 서있는 저를 향해 애뜻한 눈빛을 보내시며 “고마워” 한마디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버님은 점점 쇠하여 가시지만 육체의 쇠약함이 영혼의 맑은 기운을 이길 수 없음을 확신하며 매일 감동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지만 아버님과 만나고 얼굴을 보고 사랑을 나누며 하나님이 주신 회복의 은혜안에서 아버님과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봄이 오고 꽃이 피었다지고 햇살도 바람도 맞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마음을 다하고 있는 우리가족은 그렇게 점점 나아져 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버님이 아직 우리 곁에 계셔서 감사합니다.
2019년 5월 5일 큰 며느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