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행복을여는교회

어메이징 그레이스

조회 수 4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예닮동산 92기 수료 어부간증


(11 캄보디아목장) 이재승, 2018.9.9

안녕하세요. 예닮동산 92기 데콜로레스 방에서 은혜받고 돌아온 캄보디아 11목장의 이재승입니다. 처음 예닮에 대해 들었을 때가 언제인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언젠가 세례를 받고나면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현상이가 91기 예닮을 간다는 소식을 접했고 저도 가고 싶었지만 아직 확실히 발표되지 않았던 대학교 진학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92기에 어람이랑 같이 가라고 하시는 한소현 목자님의 말씀에 "그래 그때 친구들이랑 가자"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대학에 입학을 하고 1학기를 지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예닮동산에 가게 되었습니다.

7월말 부터 시작된 물댄동산 수련회, 가족여행, 이사 등등에 나름 너무 바빴던 저는 예닮동산에 신청해 놓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지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오느새 예닮동산 가는날 아침이었습니다. 아직 가방도 싸지 않고 마음의 준비도 부족했던 저는 부랴부랴 준비를 마치고 버스를 타러 갔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던가요. 출발 부터 마귀들이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버스를 타러 미친듯이 뛰었지만 바로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겨우 다른 버스를 타고 생각해보니 이런.. 통나무를 굴릴 때 필요하다던 목장갑을 두고 왔던 것입니다. 그냥 갈까 하다가 어람이가 자기것도 부탁했기에 "그래.. 사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목장갑을 겨우 사가지고 교회로 갔습니다. 출발 전 부터 30도가 넘는 날씨에 십여분을 걷고 와서 이미 땀에 절어있었고 그렇게 힘든가운데 홍익교회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마귀는 제가 은혜 받는 것을 원치 않는가 봅니다. 예닮에 입성하기전 갑자기 생각이 난게 있었습니다. 바로 메이플 스토리.. 아니 지금 검은 마법사가 메이플 월드를 침공했는데 예닮에 가서 싸우질 못한다니..(혹시 이해를 못하시는 분이 계실까봐 메일플 월드는 일종의 스마트게임) 마음이 갑자기 심란해졌습니다. 결국 저는 전화기를 들고 동생에게 전화로 "재현아 형꺼 메이플좀 켜놓고 염원좀 모아줘" 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사탄의 방해에서 완전히 끊으시려고 동생을 사용하셨나 봅니다. 평소에 집에 있을 시간에 동생은 지금 밖이라고 안된다고 했고 그 말에 저는 '그래.. 예닮에 가면서 아직도 내가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구나'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예닮에서의 일정은 마치 꿈과 같았습니다. 너무 좋은데 설명하려고 하면 뭐라 표현을 못하는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천국과 같은 곳에서도 사탄 마귀는 언제나 저의 빈틈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목사님은 방학이라 대학생이 많을거라 하셨는데 이번 92기 평균연령은 무려 낮게 잡아도 50대 중반? 내가 같은 또래 자매들을 너무 많이 기대했구나 하는 어리석은 생각과 어색함 속에서 하루 이틀 지내고 있을 무렵 이런 저를 긍휼이 여기신 주님은 여러 사람, 여러 상황을 통해 저에게 은혜의 시간에 온전히 만끽하게 하셨습니다. 찬양으로, 말씀으로 또 함께 통나무를 굴리면서 지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또 주님을 시간시간 만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떤 예식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어떤 모르는 집사님이 저를 섬겨 주시며 기도하는 걸 보는데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냥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분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를 이처럼 섬겨 주실까'하는 생각과 함께 많은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힘들텐데 볼 때마다 웃으며 반겨주는 풀도우미 분들, 함께 통나무를 `굴리던 방 멤버들,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예닮에 많은 어부들, 그리고 내 죄때문에 가장 높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기꺼이 발을 옮기신 우리 주 예수님이 떠오르며 저의 말랐던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저는 그때 너무나도 부끄럽고 슬펐습니다. '나는 이 사람들 처럼 섬길 수 없는데 나는 이 분들처럼 순종할 수 없는데.. 그런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있을까.' 자존감이 낮은 저에게는 그런 생각이 넘치고도 넘쳤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게 들려주시는 음성같은 마음의 속삭임이 지나쳤습니다. '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의 아들인데 그런 너가 과연 못할게 있겠니?' 그 때 부터인것 같습니다. 예닮동산에서의 은혜가 더욱 더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뜨겁던 찬양은 뜨겁다 못해 불타오르고 졸다가 살이 다까지고 부딪히던 통나무는 너무나도 잘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염려와 걱정으로 가득하던 제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34일을 그렇게 보냈나 싶습니다. 재수 할때 보다 빡세게 보낸것 같은데 너무나도 좋은 순간들 뿐이었습니다. 아직도 밥을 먹을때면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릴 때도 있습니다. 가끔 예닮을 생각하면 왜 그렇게 많은 분들이 예닮 예닮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분들이 계시다면 꼭 가보시길 바랍니다. 어색하고 재미없을것 같다고요? 제가 도우미로 옆에서 기도하며 돕겠습니다. 이런 저로 바꿔준 예닮에 보내주신 저희 목장의 목자이신 한소현 목자님과 매 식사때마다 즐겁고 행복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주방장으로 섬겨주신 담임목사님께 감사드리고 또 저를 위해 지금까지 사랑으로 지켜봐주시는 든든한 아버지 이치범 목자님과 어머니 임연송 목녀님, 그리고 풀도우미로 섬겨주신 모든 선배 어부님들 그리고 알게모르게 기도와 후원으로 섬겨주신 행복가족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교회의 머리되시며 제 삶의 주인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데꼴로레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