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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닮동산 99기 뉴뻬스까도르 소감
(13 랑깜목장) 최현영, 2024.2.18

안녕하세요, 블레싱어즈 찬양팀으로 섬기고 있는 13교회 랑깜목장의 최현영 입니다. 자난 사랑의 영성훈련 예닮동산 99기 구하고 구하라 구구시스터즈방에서 은혜받고 오늘 이 자리에서 간증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먼저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예닮동산은 엄청난 신비와 충만한 은혜가 있는 곳이라고 들었기에 기대하는 마음으로 특새에 참여하며 나름 받을 은혜를 사모하며 기도로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동산을  통해서 꼭 주님의 응답을 듣고자 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저를 시도때도 없이 괴롭히며 지배하는 걱정과 근심가운데 막연한 불안의 정서를 뿌리뽑고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주안에서의 평안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불안이라는 감정에 유독 취약하고 다른 사람보다 무척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쉽게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느끼는 불안은 돌이켜보면 순간의 감정이 아닌 알게모르게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저와 밀착된 한몸이었기 때문입니다.

11살때부터 17살까지 친할머니와 한집에서 살게 되면서 기상천외한 시월드로 인해 엄마가 많이 힘들하셨고 불안정한 모습을 자주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 저에게 엄마란 존재는 언제든 예고 없이 내 옆에서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존재라고 생각이 들었던것 같습니다. 자아가 형성되는 청소년기 전반을 걸쳐서 가장 가까운 존재인 엄마에게 느꼈던 불안함은 저의 쓴뿌리가 되었고 어느새 제 안에 견고한 진이 되어 치유되지 못하고 점점 더 깊은 무의식 속으로 파고들어 들어있어 결정적인 상황에서 언제나 불안에 따른 정서장애로 저를 무너뜨리는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동산의 어느 날, <예수님은 가룟유다의 발을 씻겨주시며 그를 용서하셨습니다. 이 시간 당신이 발을 씻겨주며 용서해야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건 엄마였습니다. 애써 엄마는 나를 사랑했고 그 힘든 시간 최선을 다해 살아내주었다고 믿으며 합리화를 해왔었지만 예닮을 통해 알게모르게 제 마음 깊은 곳에 묻어놨던 원망과 분노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왜 불안정한 행동과 말들을 하며 어린 나를 늘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게 했었는지..
그 시절 엄마에게 받은 상처를 떠올리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펑펑 울고 나니 나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귀한 딸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오죽했을까 하며 엄마의 마음과 입장이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되면서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믿음의 1세대로써 이러한 사단의 방해와 핍박을 견뎌내주었기에 나에게 신앙이 이어져 내려왔구나.. 하며 엄마가 너무나도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할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인생에 들여놓기도 싫어서, 인생의 상처를 인정하기 싫어서 원망조차 안했던 할머니를, 할머니가 만든 그 시간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의지적으로 용서했습니다. 사실 용서할 사람으로 떠올랐을 때 도망치고 싶었지만 하나님은 저를 그만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그 붙드심에 강력하게 이끌려서 <해볼게요 하나님. 저와 함께 해주실거죠?>하고 결단하며 용서는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할머니가 있는 집에 태어나서 내 인생이 망가졌을까>를 탓하던 저에게, 주님은 그것도 엄마와 저를 만들어가시는 통로였다는 생각에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용서의 끝에, 돌아가셨을 때 평안을 느꼈던 기억이 나면서 그분의 인생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과정 가운데 할머니 역시도 얼마나 상처가 많았고 보듬어주는 사람이 없었으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걸까? 어떻게 하면 자신의 죽음이 누군가의 평화가 되는 삶을 살게 된 걸까? 하는 마음이 들었고, 이내 할머니 역시도 절망적이고 불쌍한 인생이라는 생각에 용서의 고백을 하게 하셨습니다.

‘왜 혼자 버려두셨나요?’
‘왜 내 인생에 이런 흉터가 남게 하셨나요?’
예닮동산 첫날, 원망하며 던졌던 질문에 하나님은 시간마다 네가 몰라서 그렇지 주님은 항상 너와 같이 있었다고 앞으로도 그럴거라고 따뜻하게 대답해주셨습니다.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맞아, <그래서 내가 여기 예닮동산에 와 있구나. 내 감정과 생각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원망하고 남탓을 하면서 살았던 시간들 조차도 인도하셨기에, 오늘 이 시간 다시 하나님 품 안에서 안겨 사랑을 경험하고 있구나, 그 사랑이 아니면 내가 무엇으로 쓴뿌리를 뽑아내고 견고한 진에서 벗어나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을까?>하는 고백과 회개가 예닮동산 내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닮의 또 다른 날, 기도를 인도하는 분이 꼭 내 말씀 하나를 발견해서 동산을 내려가서도 이 은혜를 잊지 말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지막 날까지 나에게 주신 말씀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 식구들이 제가 받은 선물이 궁금하다기에 집 가기 전에 같이 개봉을 했는데 앞서 받은 분들처럼 화장품이 나올 줄 알았던 포장지 속에서 말씀이 적힌 예쁜 나무패가 등장하였습니다. <요한 1서 4장 8절> 그리고 그것은 3박4일 동산에서 보낸 시간을 한 번에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참고로 이 선물은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증정되는 것이였는데, 그 과정이 매우 재밌습니다. 스포를 방지 위해 자세한건 말씀드릴 수 없지만 확실한건, <하나님은 나를 너무 잘 알고 계시는구나. 어쩜 말씀을 주실 때도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주셔서 나를 웃게 하실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트가 넘치시는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이렇게 많이 웃으면서 살길 원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쓴뿌리를 뽑아낼 작정으로 올라갔기에 뭔가 굉장히 고되고 슬픈 시간이 될 줄 알았지만 울기도 많이 했지만 웃음이 더 많이 나왔던 예닮동산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상처와 아픔을 후벼파시는 방법이 아닌 사랑을 부어 덮으시는 방법으로 저를 만나주셨습니다. 이제는 제가 지나온 시간들을 비슷한 아픔에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저만의 달란트로 보게 된것 같아 감사할 뿐입니다.

그리고 동산의 마지막이 가까울때쯤 여느때와 같이 통나무 굴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문득 예수님의 웃는 얼굴이 보였습니다.
<보여? 예수님이 웃고 계셔> 그 얼굴을 가슴속에 새기며 또다시 감격의 눈물이 났습니다. <장하다, 그래 바로 그거야 현영아> 하며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예수님이 저를 보시면서 환히 웃으시는 삶을 살아보려합니다. 또한, 동산에서  주신 말씀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합니다.

엄마에게 우리 가정의 믿음의 씨앗이 되어주고 저를 하나님의 자녀로 키워주셔서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99기 예닮 동기인 수빈이와 이신성 목자님께도 함께여서 더욱 즐거웠고 통나무 굴리느라 고생 많았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언제나 사랑으로 저를 예뻐해주시는 목장 식구들에게도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예닮 기간동안 도우미와 팔랑카 기찬양으로 섬겨주신 선배 어부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정말 많은 격려와 감동이 되었습니다. 또한, 언제나 우리를 주님께로 인도해 주시고자 항상 최상의 방향으로 이끌어가주시는 영적 지도자이신 담임목사님과 행복한 삶을 통해 벼랑끝에 있었던 엄마와 저를 위기에서 건져주시고 회복의 기회를 제공해주신 사모님께 진정 감사와 주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끝으로 이제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 사랑보다 크지 않음을 확신하고 그분의 주권을 신뢰하며 진정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며 살아가길 결단합니다. 저는 예수님으로 충만합니다. 영원한 왕이 제 안에 살아계십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행복 가족 여러분 모두 하늘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데꼴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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