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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증 : <중독과의 이별> 완독 후~~~ (2020.12.12. 중직자 임명식 1년 후)

제출자 : (2 방글라데시 목장) 김기옥 권사

제출일 : 20211016/ (발표) 1212 

중독과의 이별 책을 읽고

 

먼저 이번 2021년도 제직원세미나를 통하여 중직자들에게 부여된 필독서 <중독과의 이별>을 읽고 이렇게 소감을 나누에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양해드릴 말씀은 독후감이라기 보다는 요약 내용이 많은데 중독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한 부분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보편적으로 중독이 되었다는 것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의존성, 내성, 금단현상 이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중독에 많은 시간을 쓰다 보니 직장, 학교 또는 가정에서 주요 과제를 제시간에 완료하지 못하게 되고 사회, 노동 또는 여가 활동이 점점 축소되고 결국 포기하게 됩니다. 이미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으나 중독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타인을 속여야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사회로부터 완전히 소외당하고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게 됩니다.

중독자의 관계적 특성은 자기 투사적이며 자기욕구 중심적인 일방적인 관계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욕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자기 결핍에서 나오는 욕망과 환상이 되면 그 또한 중독이 됩니다.

이를 인정 중독, 영웅 또는 구원자 중독이라고 하는데 실은 여러 종류의 행위 중독의 몸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고 중독의 특징은 의존적입니다. 자율성이 부족해 외적인 무엇에 의존해서 끊임없이 자신이 괜찮은 존재라는 것과 정체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인정이나 사랑 욕구와 관련된 좋아요’, ‘대단해요’, ‘사랑해요등과 같은 도파민적 환희를 끊임없이 갈망하게 됩니다. 그것도 자신만이 독점해야 합니다. 그 안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자신만이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과대망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인정과 칭찬을 받으면 마치 당연히 자신에게 돌아올 몫을 빼앗긴 양 분노하고 비참해합니다. 나만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당연히 시기와 질투가 많죠.

또 다른 특징은 내면세계가 살얼음처럼 깨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쉽게 마음 상하고 상한 마을을 달랠 수 없어서 그 무엇을 찾아 중독에 의존하며 특히 자기 의가 강하고 자존심이 세기 때문에 용서가 안 되고 결국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하거나 복수할 기회를 찾게 됩니다. 근본적으로 에고 중독이 다뤄지지 않는 한 어떤 중독도 치료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객이 전도될 때 중독에 덫에 걸려듭니다.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가장 두드러지는 인간의 본성은 바로 우월함에 대한 열망이다

에고 중독을 인식하고 다루어지지 않는 한 어떤 중독 치료도 불가능합니다.

동반의존자는 중독자로 하여금 자신에게 의존, 즉 중독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중독을 배양하고 유지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사랑, 헌신, 희생이라는 이유로 말입니다.

동반중독자들의 특징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병적 연민과 구세주 심리입니다.

동반중독자의 행동은 그 자체가 모순이고 또한 애증관계이며 자신도 돌볼 줄 몰라서 병적 연민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중독사이클이되며 자학적 사랑입니다. 즉 자기 방치와 학대적 사랑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고전 13:5) 뒤이어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라는 말씀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3)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동반중독자는 자신의 필요와 문제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며, 강박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필요나 문제를 해결해 줌으로 대리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는 말씀을 새겨봐야 합니다. 그래서 동반중독에는 영적 성장이 없습니다.

그들의 내면세계는 공허, 불안, 불행감, 수치감, 무감각, 자기함몰, 완벽주의 조정과 통제, 구원자 심리, 거짓과 이중성, 적개심, 인정욕구, 병적 연민, 의존성, 혼돈과 모순 등으로 가득차 있어 스스로도 중독자라는 것을 발견하기가 힘듭니다. ‘참담한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 말로를 보게 됩니다.

중독 강박 상태가 심해질수록 중독자는 실행할 때마다 느끼는 수치심과 고통을 은폐하기 위한 자기 방어에 필사적이 됩니다. 아직 중독자가 아니라는 부정과 자신이 통제하고 있다는 과장 등의 다양한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합니다. 이는 죄책감 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기를 원해서입니다. 이러한 방어기제는 중독 고유의 논리, 망상, 중독 의례, 그리고 사이클에 의해 더욱 견고해집니다. 중독적 삶의 양식을 유지하고 강화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거짓말에 엄청난 시간을 소모합니다.

또한 중독자들에게는 [인과관계]가 아주 중요합니다. 미래에 대해서는 만일 ...한다면으로, 현재에 대해서는 만일 ...하면으로, 과거에 대해서는 만일 ...했더라면으로 통제합니다.

이것을 중독자들의 ‘3대 만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모두 ‘...하면 반드시 ...될 것이라는 강박적 단순 논리입니다.

자신의 불행과 실패를 모두 다른 사람의 탓으로 생각하고, 철저하게 외적인 것에 의존해서 행복과 불행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의존 중독이라고 합니다. 모두 부모와 세상 탓입니다. 세상에 대해 매우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중독자는 정작 신뢰할 수 없는 자신 외에는 아무도 신뢰하지 않습니다. 모순 그 자체입니다. 타인의 평가에 의존해 자신의 존재감과 가치감을 확인한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색들이 존재하는데, 중독자들은 모든 것이 흑백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통제에 대한 욕망 때문에 결국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중독자 특유의 부정과 과장이라는 심리적 방어기제 때문에 끝까지 통제하려고 합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중독은 회복 과정에서 한 치의 방심도 허용할 수 없는 치열한 싸움이기에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결코 홀로 싸울 수 없는 전쟁입니다.

병은 사랑의 결핍이다라는 정의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중독은 공감적 돌봄을 받지 못해 생긴 허약한 자기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독은 중독 물질이나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소외가 진짜 원인이라고 합니다. 중독의 반대말은 단지 맑은 정신이 아니라 관계’, 정확히 말하면 친밀함이라는 것입니다. 교류 즉 소통이 불통이 되어 다른 해소 방법을 갈구하게 됩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을 제거하려 애쓰지 말고 주님이 바로 세우실 때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더불어 살라는 것입니다. [받아들임]과 수용, 소통은 억압의 통제를 풀어주고 중독을 해독해주는 열쇠인 거 같습니다.

인간이 찢어진 자아를 받아들이고 또한 찢어진 감정을 느끼는 것도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에야, 무엇이든 자신에게 가능한 치유를 바라게 되고 따라서 최대한 온전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믿음은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룰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 모호성을 끝까지 걸어가는 역설입니다. 예수님이 그 믿음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기쁨과 감사의 삶은 중독자의 삶에서 회복으로 나아가는 길목으로 접어드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것이 복음의 역설입니다. 이 역설로 인해 우리는 주 안에서 기뻐할 수 있고 또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죄인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만이 회복하고자 하는 중독자들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기쁨이며 희망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5:20)

하나님이 내 삶에 하나님이 되게 하라. 그것이 영성의 시작이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3:17).

하나님과 절대적 관계를 가지고 계신 예수님께서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15:11)고 말씀하십니다.

책을 읽으며 내가 안고 있는 많은 종류의 중독에 눈을 떴습니다.

수많은 중독의 노예가 아니라 이를 통해 주님과 깊이 만나야겠다는 소망이 생기기도 합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8:39)

주님만이 내 아픔 아시고 나의 연약함과 죄를 모듬어 주시니 그 안에 치유와 자유함을 얻습니다.

나 자신과 가족에게 존중의 마음과 공감적 소통, 공감적 돌봄, 사랑과 격려가 생활화되도록 말씀 안에서 먼저 평안과 쉼을 얻어야겠습니다. 결론을 얻기까지 독서의 환경을 허락하시고 이후의 up, down 하는 시간 속에서도 임마누엘 하실 주님께 다시금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귀하고 유익한 책을 필독하도록 사랑하는 우리 목사님을 통해 인도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무한 영광을 올려드리며, 우리 2교회 방글라데시 목장의 천경헌 장로님과 김문숙 권사님과 목장식구들에게 사랑을 전합니다.

하늘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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